[생명도토리#27] 간격의 시

하늘다람쥐가 물어오는 생명도토리 #27

간격의 시


정현종 시인의 시 ‘섬’은 고작 두 줄이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섬들 사이에 물이 있는 줄 알았는데 섬이 사람들 사이에 있단다. 평론가들은 이 시가 고독한 현대인의 삶을 표현했다지만, 나는 이 시에서 오히려 긍정을 읽는다. 사람들이 섬들이고 그들 사이에 물이 채워져 있다면 배를 타고 물을 건너도 그 사람의 허락 없이는 섬에 오르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들 사이에 섬이 있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 섬이 개인 소유가 아니라면 누구나 오를 수 있다. 스웨덴에는 줄잡아 221,800개의 섬이 있고 우리나라에도 3,358개나 있다. 대부분은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다. 그러니 우리는 특별한 허락 없이도 그런 섬들에 올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갈 수 있다. 결국 사람이 문제이지 간격은 문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나친 기대는 섣부르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리는 바람에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외운 외국 시 중 하나가 된 ‘가지 않은 길’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담을 고치며(Mending wall)’라는 시가 있다. 뉴햄프셔 주 그의 집에는 나지막한 돌담이 있는데 겨울에 일부 무너져 내린 걸 이웃과 함께 수선하면서 쓴 시란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좋은 담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Good fences make good neighbors).” 담이 아예 없으면 그건 이웃이 아니라 한 집안이다. 그러나 같은 집안이라고 반드시 화목한 것은 아니다. 담은 꼭 필요한 것이지만 너무 높으면 왕래가 어렵다. 이웃간의 담을 프로스트의 담만큼만 낮추면 그리 어렵지 않게 건널 수 있다. 이게 바로 거의 15년 전 내가 우리 사회에 화두로 던진 통섭(統攝)의 핵심 개념이다. 서로의 존재를 충분히 존중하면서도 서로의 장점을 배우며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시 ‘담을 고치며’에서 ‘좋은 담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라고 했다.

 

레바논 태생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 1883~1931)의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라는 시는 적당한 소통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오직 큰 생명의 손길만이 너희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칼릴 지브란의 시


안도현 시인은 이 시와 매우 흡사한 시를 썼다. ‘간격’이라는 제목을 지닌 시에서 그는 불이 만들어준 간격을 발견한다.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중략]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중략]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울울창창(鬱鬱蒼蒼) 숲을 이룬다는 것을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 보고서야 알았다

공초 이상은 선생의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공초문학상의 2019년 수상자 유자효 시인의 시 ‘거리’는 이 세상 모든 것들 사이의 간격을 참으로 멋지게 묘사한다.

그를 향해 도는 별을
태양은 버리지 않고

그 별을 향해 도는
작은 별도 버리지 않는

그만한 거리 있어야
끝이 없는 그리움

자연의 거리가 정확히 그런 거리다. 우리들 사이의 거리도 딱 그만 해야 한다. 우리가 가고 싶은 그 섬만큼의 간격.


최재천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