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일기 2014.7~2016.7 여우기


2016년 생태예술 전시

‘비밀일기: 2014년 7월 ~ 2016년 7월. 여우기’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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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시개요 생물을 대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식과 마음의 층위가 있다. 가장 흔하게는 생물을 단순 시각적인 대상으로 접하거나 소비하기도 하며, 더 나아가 생물을 이야기의 주제로 삼아 상상력을 발휘해보기도 한다. 또는 생물을 과학적 대상으로 여겨 연구라는 행위를 통해 그 생물의 ‘본질’에 더 가깝게 다가가고자 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쩌면 생물은 특정 관점이나 방법론을 통해 탐구하거나 심화할 ‘대상’이 아닌지도 모른다. 생물과 나를 동일선 상에 놓고 마주하며 온전한 생명체로 여기고 정신적, 물질적 소유관계로부터 탈피한 ‘마주함’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하는 생명에 대한 자세가 아닐까. 생물에 대해서 가져봤던 다양한 관심사의 영역에서 하나의 생물을 접근해보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식론적 궤적과 성찰을 그려보는 의미로서 이번 전시를 기획하였다.   2. 전시기간 2016년 7월 27일 ~ 2016년 8월 00일 (오프닝 7월 27일)   3. 전시설명 뭔가가 좋으면 어찌 해야 하는 걸까. 물론 가만히 있으면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러고 싶지가 않다. 좋아한다는 그 마음 상태로 충분한 것인데도 우리는 그저 가만히 있는 걸로는 성이 차질 않는다. 좋아하는 대상을 향해 뭔가를 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야 그 좋아함이 전해지고, 확장되고, 충만해지는 것 같다. 어쩌면 좋아함은 상태가 아니라 행동이다. 어느 날, 나는 여우에 꽂혔다. 살아있는 야생 여우를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매일 접하는 수많은 이미지 중에서 어느 순간 여우는 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우라는 우아한 단어를 이름으로 한 더 우아한 생물. 저 오뚝한 콧날, 귀족적인 털, 요염한 꼬리. 저 예리한 눈빛, 경쾌한 걸음걸이, 기민한 몸가짐. 저 영리한 두뇌, 삼가는 자세, 고독한 삶. 그렇다. 나는 여우로부터 온갖 가치를 느끼고 발견하고 있다. 여우는 내 삶 속으로, 서식지를 확장한다. 이렇게 나는 한 생명체와, 연(緣)을 만든다. 나는 여우의 이미지에 탐닉한다. 여우라는 동물의 기가 막힌 외모를 포착한 모든 시각적 시도를 나는 존중한다. 인간의 예술적 능력으로 탄생시킨 여우의 다양한 재현은 여우 형태학의 광대한 은하계를 구성한다. 망막에 여우의 형상이 맺힐 때 신경다발은 흥분하고 미감은 진동한다. 지구상에 여우처럼 생긴 생물이 생겨났음은 기적이요 축복이요 아름다움이다. 여우의 고유한 미학이 여우의 본질이다. 나는 여우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여우가 자기도 모르게 자극한 창조적 영감의 원천은 표현의 날개를 달고 동화와 신화, 소설과 설화를 탄생시킨다. 이 세상에 투사되는 여우의 존재감은 이야기의 방식을 통해 증폭되고 회자된다. 특유의 표정은 냉소를, 특유의 걸음걸이는 총명함을, 특유의 생태는 지성을 자아낸다. 숲속의 주체이자 주인공으로서 여우는 하나의 의미계를 관장하는 작은 신이다. 여우만이 촉발시킬 수 있는 이야기가 여우의 핵심이다. 나는 여우의 과학에 몰입한다. 스스로를 설명하지 않는 존재는 연구라는 우회적인 행위를 통해서 그 실체에 근접할 수 있다. 환원주의적 세계관으로 생명현상을 수치화하고 가설의 설정과 검증을 통해 생물체의 한 켠을 추출해 낸다. 비언어적 자연계에 부여하는 유일한 합리적 질서인 과학이 도출한 자료, 여우로부터 파생된 데이터와 그래프, 분석과 고찰을 섭렵한다. 여우 위로 축조되는 지식체계에 열중한다. 여우에 대한 앎이 여우에 대한 궁극이다. 나는 여우와, 마주한다. 미학도 이야기도 과학도 나와 여우 사이에 없다. 나는 여전히 여우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 좋아함은 더 이상 어떤 심화도, 발전도, 승화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여우의 특별함은 어느덧 고요한 색채를 띤다. 복잡함 대신 단순함이, 수집과 섭렵 대신 관조와 무행(無行)이, 사랑 대신 자유가 찾아든다. 나와 여우도 아니다. 나, 여우. 여우, 나. 문 밖으로 여우가 홀연히 사라진다. 여우야, 안녕.   기획/주최 생명다양성재단, 문화공간 숨도 전시기간 2016년 7월 29일(금) ~ 8월 31일(수) 전시장소 문화공간 숨도 1층 작은 전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