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도토리#28] 학교 놀이와 귀향

하늘다람쥐가 물어오는 생명도토리 #28

학교 놀이와 귀향


운산분교 어린이들이 이화여대를 방문해서 최재천교수와 함께 자연사박물관으로 가고있다.

어린 시절 소꿉장난을 할 때 가장 자주 했던 놀이는 역시 ‘부부놀이’ 혹은 ‘결혼놀이’였을 듯 싶다. 이웃집 여자 아이와 따뜻한 담벼락에 붙어 앉아 쑥, 엉겅퀴, 민들레 등을 따다가 붉은 벽돌 조각을 곱게 부숴 만든 고춧가루를 뿌려 김치를 만들어 먹곤 했다. 이 놀이 다음으로 내가 자주 했던 놀이는 아마 ‘학교 놀이’였던 것 같다. 동네 아 이들 여럿을 나란히 앉혀 놓고 나는 언제나 선생님이었다. 그때도 나는 남 가르치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던 것 같 다.

그때부터 삶이 한 바퀴를 돌아 갑으로 되돌아올 즈음에 학교 놀이를 다시 하게 될 것 같아 설렌다. 지금 강원도 강릉시 운산동 운산분교에는 우리 생명다양성재단 생태 교실이 지어지고 있다. 옥상 공간이 넉넉한 2층 건물인 데 아래층에는 학교 아이들 급식 시설이 들어설 것이고, 2층에는 아이들과 함께 자연 생태를 관찰하고 탐구할 수 있는 제법 널찍한 공간이 마련되고 있다.

2015년 어느 날 아침 신문을 읽다 화들짝 놀랐다. 강릉시 왕산면에 있는 왕산초등학교가 학생 수가 줄어들어 폐 교될지 모른다는 소식이었다. 왕산초등학교 앞으로 흐르는 왕산천은 내가 어렸을 때 삼촌들이랑 꾹저구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 먹던 추억의 장소다. 출산율 저하로 문 닫는 학교가 한둘이 아니지만 왕산초등학교를 그대로 문 닫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사실은 학교보다 개울을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러나 다시 찾은 왕산천은 적이 실망스러웠다. 어려서 보던, 콸콸 흐르는 그런 냇물이 아니었다. 그래도 학교가 살아야 개울도 살아남을 것 같아 학교 당국에 연락해 돕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나 중앙지에 기사가 난 덕인지 마을 사람들과 강릉 시민의 헌 신으로 학교는 폐교 위기를 모면했다. 딱히 내가 도울 여지도 없이.

강원도교육청(교육감 민병희)에서 2019년 2월 20일 오후 2시 생명다양성재단과 학교 생태환경교육 활성화를 위한 협약식을 체결했다.

그 후 2018년 여름 강원도교육연수원에서 특강을 마치고 당시 연수원장님과 점심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어쩌다 이 얘기가 튀어나왔다. 가만히 내 얘기를 듣던 원장님이 불쑥 다시 도울 의향이 있느냐 물었다. 잠시 주저하는 내 게 미처 거절할 틈도 주지 않은 채 그는 강릉 지역에는 여전히 폐교 위기에 놓은 학교들이 많다며 내 도움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다그쳤다. 나는 그 날 제대로 확답한 것 같지도 않은데 얼마 후 장학관님이 내 연구실을 방문 했고 그로부터 또 얼마 후 나는 재단 식구들과 함께 강릉 지역 초등학교 세 곳을 둘러보게 되었다. 세 학교 모두 아담하고 제각각 매력이 있었지만 우리는 그 중에서 운산분교를 선택했다. 그로부터 또 얼마 후 우리는 강원도교육청이 예산을 마련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번갯불에 콩을 볶듯 일사천리로 진행된 이 사업은 드디어 우리 재단과 강원도교육청이 업무 협약을 체결하며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접어들었다.

우리는 이미 몇 차례 학교를 방문해 강연도 하고 선생님들과 회의도 진행했다. 지난 가을에는 하루 선생님 몇 분과 아이들을 이화여대로 불러 재단이 기획한 몇 가지 생태 체험 프로젝트도 시행하고 이화여대 자연사 박물관도 함께 둘러보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인데 분교는 교과 운영이 비교 적 자유롭단다. 그래서인지 운산분교 아이들은 교실에 머무는 시간보다 바깥에서 뛰노는 시간이 훨씬 많다. 강릉 지역의 산에는 침엽수가 단연 우점종이라 식물 다양성이 낮은 편인데 운산분교를 둘러싸고 있는 야산 에는 침엽수와 활엽수가 고르게 섞여 있어 아이들이 들쑤시고 뒤질 게 제법 많다. 게다가 운동장 바로 옆에 는 묵논도 하나 있어 아이들은 그곳에서 개구리, 지렁이, 미꾸라지, 메뚜기 등을 잡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른 다. 그래서일까 운산분교 아이들은 구김과 스스럼이 없다. 이제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함께 놀면 무척 재미 있을 것 같다.

운산분교에서 열린 생명다양성교실 모습 중 일부

우리는 지금 아이들과 함께 할 생태 체험 교육을 기획하느라 여념이 없다. 내가 평생 부르짖어온 나만의 교 육철학, “배우는 줄 모르면서 배우는 게 가장 훌륭한 배움”이라는 걸 제대로 한번 실천해보고 싶다. 초등학 교 아이들을 모아 놓고 ‘생태학이란 무엇인가?’부터 가르치는 우는 범하지 않을 것이다. 말 그대로 ‘체험 교 육’을 실시할 것이다. ‘체험 교육’에서 구태여 밝힌다면 ‘체험’에 방점을 찍을 것이다. ‘교육’은 저절로 따라 오게 만들면 된다. 운산분교 아이들은 이미 야외 체험이 몸에 배어 있다. 우리는 그 아이들이 신나게 체험할 거리를 다양하게 제공하면 된다. 생태 교실과 옥상 공간에 아이들이 체험하고 관찰할 수 있는 ‘작은 생태계 (microcosm)’들을 마련할 것이다. 나나 재단 연구원들이 학교에 상주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선생님 과 아이들이 스스로 관찰하고 그 결과를 입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할 생각이다. 그들이 올리는 데이터 는 우리가 서울에서도 로그인해서 분석할 수 있기 때문에 가끔씩 우리가 학교를 방문할 때에는 사전에 분석 된 자료를 가지고 아이들과 함께 토론하고 다음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된다. 학교 근처에는 제법 늠름한 습지도 있어 습지생태계에 관한 모니터링 프로젝트도 마련해 진행할 예정이다.

강원도교육청은 우리의 이런 노력이 강원도 내 다른 학교로 전파되어 강원도가 명실공히 우리나 라 생태 교육의 모범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는 우선 강릉 지역 다른 학교의 선생님들과 네트워크 를 형성하고 우리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과정과 결과를 공유할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필요하다 면 여름과 겨울 방학에는 생태 캠프를 열어 도내 다른 학교의 아이들도 직접 우리 프로그램을 체험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보다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소셜네트워크(SNS) 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한다. 우선 우리의 활동을 정기적으로 유튜브에 올릴 계획이다. 아직까지 유튜브에는 이 같은 생태 교육 현장의 모습을 담아내는 프로그램이 없어 우리의 시도가 신선하게 다가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종전처럼 일류 대학을 나온다 하더라도 미 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걸 이 땅의 젊은 부모들은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많은 부모들은 적어 도 중학교에 진학하기 전까지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형태의 교육 환경을 제공하고 싶어 한다. 생태 교육도 당연히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것이다.

우리 생명다양성재단이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점 외에도 내게는 운산분교 생태 체험 사업이 갖는 의미가 또 하나 있다. 2006년 내가 서울대에서 옮겨오는 과정에서 이화여대가 내게 석좌교수 직을 제안하며 정년을 70세까지 연장하는 바람에 나는 앞으로도 4~5년 더 일할 수 있지만 서서히 은퇴 를 준비해야 한다. 강릉은 내가 태어난 곳이니만큼 나는 지금 슬그머니 귀향 과정을 밟고 있는 것 이다. 게다가 운산분교는 비록 강릉비행장의 활주로로 막혀 있지만 직선거리로 내가 태어난 집에 서 가장 가까운 학교일 듯싶다. 내가 태어난 집은 강릉비행장이 확장되며 그 경내로 흡수되어 이제 는 흔적조차 찾기 어렵게 돼버려 운산분교는 어쩌면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귀향 일지 모른다. 학교 놀이도 설레고 반세기만의 귀향도 설렌다.


최재천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