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도토리#26] 백과사전에서 백과사전으로

하늘다람쥐가 물어오는 생명도토리 #26

백과사전에서 백과사전으로


지금은 스스로를 책벌(冊閥)이라 칭하며 온통 책에 파묻혀 살지만 내가 어렸을 때에는 책이 참 귀 했다.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그 집에 책꽂이가 있으면 “이 집에는 어떻게 집안에 도서관이 있을까?” 하며 신기해했다.

하지만 그땐 책은 귀해도 시간은 참 많았다. 하루 종일 실컷 놀아도 좀처럼 해가 지지 않았다. 허구 한 날 대청마루에 누워 뒹굴뒹굴 시간과 씨름하는 게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료함을 어쩌지 못 해 한껏 몸을 꼬고 있는데 마루 한쪽 끝에 놓여 있는 두툼한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동아백과사 전’이었다. 아버지께서 뭔가 찾아보시려고 가져다 놓으신 것 같았다.

백과사전을 뒤적거리는 일은 뜻밖에 재미가 쏠쏠했다. 애당초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책도 아니다 보 니 그저 손 가는 대로 아무 곳이나 펼쳐 읽으면 됐다. 종종 그림이나 사진도 곁들여져 있어 지루하지 않았고 길이도 마침맞았다. 이를테면 아날로그보다는 디지털 스타일의 글이었다. 스마트폰 화면 하 나에 들어갈 정도의 길이라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다.

눈만 뜨면 집 바깥으로 뛰쳐나가기 바빴던 아들 녀석이 갑자기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을 지켜 보던 어머니는 어느 날 방문판매원으로부터 ‘세계동화전집’ 한 질을 구입해 주셨다. 에드몬도 데 아 미치스의 ‘사랑의 학교’와 엑토르 말로의 ‘집 없는 아이’를 비롯한 동화의 세계로 빠져들며 나는 서서 히 책 읽는 아이가 되어갔다.

중학교에 입학하자 어머니가 이번에는 ‘한국단편문학선집’을 사주셨다. 김동인의 ‘배따라기’로 시작 해서 선우휘의 ‘불꽃’으로 끝나는 30권짜리 전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정말 책이 너덜너덜해 지도록 읽고 또 읽었다. 비록 지금은 과학자로 살고 있지만 우리나라 초기 단편 소설에 대해서는 제 법 아는 체 하며 지낸다. 어쩌다 보니 문인 친구들이 제법 생겼는데 그들과의 대화에도 가끔 주제넘 게 끼어들 정도다.

한국 문학을 섭렵하던 내가 세계 문학으로 시야를 넓히게 된 것은 역시 어머니가 들여 놓은 ‘노오 벨문학상전집’ 덕택이었다. 지금은 ‘노벨’이라고 짧게 부르는데 그땐 무슨 연유인지 ‘노오벨’이라 불렀다. 이 전집은 태생적인 결점을 안고 있었다. 전집이라며 팔았는데 해마다 새로운 노벨문학 상 수상자가 나오는 바람에 전집으로서 완성도를 유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출판사는 해마다 연 말에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기 무섭게 똑같은 양장의 책 한 권을 서둘러 내놓았다. 우리는 그 책을 사서 전집의 맨 끄트머리에 붙이면 됐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70년 겨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전집 12 호로 나온 솔제니친 편에는 ‘수용소 군도’와 ‘암병동’ 같은 장편은 없었고 ‘이반 제니소비치의 하 루’(지금은 주로 ‘데니소비치’로 부른다)만 ‘사슴과 라아게리의 여인’, ‘바람에 흔들리는 등불’ 등 희곡 두 편과 나란히 실려 있었다. 그리고 이례적으로 책 뒤쪽에는 단편소설 ‘오른손’과 함께 짤막 한 수필 몇 편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기껏해야 반 쪽 남짓의 ‘모닥불과 개미’라는 수필을 마주했다.

추운 겨울에 모닥불을 피우다가 장작 한 개비를 넣었는데 그 안에 개미집이 있는 줄 몰랐단다. 그런데 안간힘을 다해 타오르는 불길로부터 도망치던 개미들이 홀연 방향을 바꾸더니 활활 타오 르는 통나무 위로 기어올라가 그대로 거기서 죽어가더란다. 그래서 솔제니친은 묻는다. “그 어떤 힘이 그들을 내버린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게 한 것일까?”

이로부터 꼭 10년 후 나는 극적으로 이 질문과 다시 만난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생태학 석사 과정을 시작한 이듬해인 1980년 수강 편람을 뒤적이던 나는 ‘사회생물학’이라는 과목을 발견 했다. 문과와 이과를 구분하지 않고 내 마음 내키는 대로 가라 했으면 아마 나는 사회학과로 진학 했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생물학에 몸담은 내게 사회학과 생물학을 한데 묶어 놓은 듯한 과목 이 나타난 것이다. 앞뒤 재지 않고 신청한 그 수업의 첫 시간에 사회생물학이란 이를 테면 일개미 가 왜 자기를 희생하며 군락을 지키는가에 대해 설명하는 학문이라는 교수님의 말씀에 불현듯 나는 솔제니친을 떠올렸다. 10년 전에 읽은 그 짧은 수필이 나를 사회생물학으로 인도한 것이다.

그 후 나는 하버드대로 옮겨 사회생물학을 창시한 에드워드 윌슨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미시건대 교수를 거쳐 1994년 서울대로 돌아왔다. 동물의 행동이나 들여다보는 나 같은 사 람을 대한민국 사회가 필요로 할까 의아해했던 나는 뜻밖에 몰려드는 학생들에 행복한 비명을 지 르기 시작했다. 행복하긴 한데 분명 비명이었다. 찾아오는 학생들마다 한결같이 코끼리, 침팬지, 돌고래 등을 연구하고 싶다는데 당시 내게는 그럴 만한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학교 교정에서 개 미나 연구하자며 학생들을 달래던 어느 날 나는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학생들을 위해 나를 버리기로 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학문 발전을 위해 과감히 내 연구를 접기로 했다. 어차피 열대에 가야 할 수 있는 내 연구를 고집하지 않고 학생들이 하고 싶어하는 연구를 어떻게든 함께 해보려 노력하다 보니 우리 연구실은 그야말로 동물원이 되었고 내 연구 목록은 내가 봐도 가관이다. 어느덧 국제 논문 100여편을 썼건만 어느 분야 하나라도 깊게 파고들지 못 하고 온갖 동물에 산지사방 중구난방 흩어져 있는 꼴이란 내가 봐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러던 내게 일생일대의 엄청난 반전이 다가왔다. 2010년 사회행동 부문 편집장으로 참여했던 ‘동물행동학 백과사전’ 개정판의 총괄 편집장으로 추대된 것이다. 동물행동학 지도에 대한민국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이웃나라 일본은 동물행동학회에 수백 명이 모이지만 우리는 기껏해야 나와 내 제자들을 빼면 그야말로 손으로 꼽을 지경이니 말이다. 그런 존재감도 없는 나라의 학자에게 총괄 편집을 맡기다니. 놀라운 것은 내가 추대되는 과정에서 우리 분야 원로들이 나에 대해 내린 평가였다. 평가를 의뢰 받은 원로 학자들의 절반이 신기할 정도로 비슷한 얘기를 하더란다. “우리 중에 그만큼 다양한 동물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를 한 학자는 없다. 다른 건 몰라도 백과사전의 편집장으로 그보다 더 나은 학자를 떠올리기 어렵다.”

사실 나는 은근히 제자들에게 빼앗긴 내 삶을 후회하며 살았다. 오로지 한 우물만 파온 유학 시 절 친구들이 대가의 반열에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며 과연 내 결정이 옳았을까 자책하던 참이었다. 제자들에게 양보한 내 삶이, 불모지인 이 땅에 학문을 뿌리내리기 위해 내린 내 결단이 이런 식으 로 되돌아오리라는 걸 나는 미처 몰랐다. 평생 동물과 더불어 살며 그들의 세계를 이해하려 애쓴 내 삶의 여정이 백과사전에서 시작해 백과사전으로 일단락되는 것 같다.


최재천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