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숲에서 긴팔원숭이와 다시 만나다.

긴팔원숭이 과학자들의 이야기

머나먼 인도네시아의 열대우림에서 긴팔원숭이라는 동물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현장으로부터 생생하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이제부터 주기적으로 연재하고자 합니다.
긴팔원숭이 연구는 한 때 중단위기에 놓였다가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다시 기회를 맞았습니다.
밀림으로부터 전해온 소식을 통해 과학자들과 야생동물들의 삶을 엿보길 바랍니다.


 

#1. 숲에서 긴팔원숭이와 다시 만나다

드디어 긴팔원숭이들을 만나기 위해 할리문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나라의 숲과는 전혀 다른, 열대 우림의 정글 숲으로 말이죠.

오랜만에 가는 거라, 숲으로 출발하기 전에 준비하는 과정 (씻고 필드복으로 갈아입기, 배낭과 쌍안경 챙기기, 마실 물을 담아 넣기, 약간의 간식과 필드 노트, 연필, 자를 작은 보조가방에 넣기 등)이 제 차례를 못 찾고 이리저리 뒤섞여버리는 바람에 거실과 방을 불필요하게 많이 들락날락 했습니다.

장비를 다 챙기고 논둑과 캠핑그라운드를 지나 본격적으로 숲에 들어왔습니다. 열대우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초록색과 촉촉한 수분을 가득 머금은 숲. 마을과 멀어져 점점 숲 깊숙이 들어가면 숲의 수관부에 가려져 들어오는 빛의 양이 현저히 줄어들고, 공기도 달라지는데 이 때 숨을 크게 들이 마십니다. 촉촉하고 개운한 물의 냄새, 상쾌한 나무와 흙 냄새가 가득 들어와 온 몸에 퍼지는 걸 느끼면서, 드디어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교적 만나기 쉬운 A그룹을 찾아 나선 날이라 금방 긴팔원숭이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1년 전따라다녔던, 그리고 앞으로도 따라다닐 아모레(Amore)와 아완(Awan) 두 아이들은 얼마나 컸을지, 또 두 달 전 기적처럼 태어난 새로운 아기 (아자입)Ajaib은 어떻게 생겼을지 드디어 볼 수 있게 되어 흥분을 가라 앉히기 힘들었어요. Amore는 어느덧 거의 성체와 비슷한 크기가 되었습니다. Awan도 예전에 비해 몸에 동글동글한 곡선이 많이 사라지고 팔과 다리가 쭉쭉 뻗어 어엿한 청년이 되어가고 있어요. 따로따로 크기만으로 보면 이제 Amore와 Awan을 구별하기가 더 힘들게 됐지만,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Awan에게는 그 특유의 동글한 귀여움이 아직 남아있어요. Ajaib은 처음 보는 순간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작은 생명체가 엄마의 배에 용케 잘 매달려 있는 모습, 나뭇잎을 잡아보겠다고 가냘픈 팔을 뻗어 버둥대는 모습, 움직임 하나 하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새로운 생명은 언제나 기쁨을 주는데, 멸종위기의 위험 속에서 간신히 살아가고 있는 긴팔원숭이의 새 생명은 그 기쁨이 더 클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긴팔원숭이 가족은 모두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 잘 살아남았구나, 잘 살아가고 있구나 하고 대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어 반갑다 혼자 그들에게 인사했습니다.

나무 높은 곳에 사는 긴팔원숭이를 관찰하려면 계속 하늘을 쳐다봐야 합니다. 하지만 책상 위 모니터 앞에서 시간을 보내느라 굳은 목 때문에 오랜 시간 고개를 쳐들고 있기가 조금 버거웠습니다. 비가 자주 내린 탓에 미끄러운 흙을 밟을 땐 조심스러웠죠. 하지만 전에 1년의 시간을 숲에서 보내면서 체득한 숲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완전히 까먹지는 않았나 봅니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지나고 강을 건너면서 몸이 기억하고 움직인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도시에서의 삶의 방식을 버리고 숲에서만의 방식을 따르는 것. 이것을 그리워했습니다. 도시의 바쁜 삶은 그 그리움마저도 잊게 만들었지만 숲에 들어온 순간, 이 곳에 얼마나 돌아오고 싶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또 여기의 삶의 방식이 완전히 잊혀지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하며 두 번째 숲에서의 삶은 또 어떨까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우기의 열대우림. 숲에 들어온 첫날부터 비가 세차게 내려 우비를 쓰고 나무에 기대고 앉아 비를 간신히 피하며, 그 안에서 빗소리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풀벌레 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상념에 빠지는 것. 이것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어 참으로 다행입니다.


2018. 12. 22. 토요일
최아현 연구원